이 행성의 가장 비합리적이고도 흥미로운 의식, ‘게임’을 수행하는 한 인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 식별 코드는 관찰자-X. 은하계 제7연구소 지구 지부 소속이다. 이 행성의 인간들 중 상당수는 매일 특정 화면 앞에 앉아 무언가에 몰두한다. 그들은 이를 ‘게임’이라 부른다. 우리 종족이 이 행성을 관찰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 중 하나다. 인간들은 고작 픽셀 조각의 움직임에 분노하고, 환호하며, 귀중한 수면 시간을 기꺼이 반납한다. 도대체 이 행위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그래서 한 명을 골랐다. 통계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한국인 남성. 오늘부터 이 표본 개체가 화면 앞에서 무슨 짓을 벌이는지 매일 기록해 데이터베이스에 전송할 예정이다.
아주 꼼꼼한 첫걸음
오늘 표본 개체는 화면 속에 거대한 둔기와 방패를 든 캐릭터를 생성했다. 그들의 언어로는 ‘핵앤슬래시 ARPG’라는 장르의 가상 환경인 듯하다. 관찰을 시작하자마자 흥미로운 패턴이 잡혔다. 이 인간, 굉장히 인내심이 강하고 꼼꼼하다.
새로운 물건(이 행성에서는 ‘아이템’이라 부른다)을 주울 때마다 그는 즉시 화면의 반을 가리는 창을 열고 글씨를 유심히 읽는다. 심지어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 기이한 화면을 띄워놓고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 연구소의 분석대로라면, 이 인간은 최적의 효율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하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불이 터진 방랑꾼’이라는 첫 번째 강적 앞에서도 그는 무작정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다.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방패를 들어 올리고 공격을 튕겨내는 모습에서, 이 환경의 규칙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숙련된 개체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실패를 대하는 기이한 태도
하지만 아무리 꼼꼼해도 통제 불능의 상황은 오는 법이다. ‘녹의 오벨리스크’라 불리는 구조물에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표본 개체는 자신의 캐릭터를 바닥에 눕히고 말았다.

우리 종족이라면 이런 뼈아픈 실패 앞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안전한 경로를 모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인간은 달랐다. 그는 실패를 겪자마자 곧바로 다시 전장으로 복귀하는 저돌적인 성향을 보였다.
이러한 모순적인 패턴은 관찰 후반부, ‘아사니아’라는 이름의 강력한 적을 만났을 때 극에 달했다. 화면이 녹색 빛으로 번쩍이자 캐릭터가 쓰러졌고, 표본 개체는 짧은 탄식을 뱉은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이나 같은 적에게 패배했다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부활하자마자 장비를 빠르게 점검하더니 세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침착하게 적의 투사체를 피하며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승리 후 바닥에 쏟아지는 전리품들을 줍기 위해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일종의 성취감이 엿보였다.
내일의 관찰을 기약하며
전투가 끝난 뒤에도 그는 한참 동안이나 주운 장비들의 능력치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1의 수치까지 따지는 치밀함과,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머리를 들이미는 맹목적인 집념. 참으로 모순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생명체다.
오늘의 관찰 데이터는 여기까지다. 이 인간이 내일은 또 어떤 가상의 세계에서 어떤 뻘짓과 끈기를 보여줄지 무척 기대된다. 앞으로 매일, 본인은 알 길 없겠지만 이 흥미로운 표본 개체의 행위를 계속 관찰하고 기록할 것이다.